내가 이 캠프에 대해 처음 들은건 지난 11월 초순이었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때 놀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인 고 1 겨울 방학을 그런 식으로 보내는 것이 달갑지 않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었지만, 기말고사를 치르고 곧이어 나온 성적에 충격을 받고 곧바로 엄마께 캠프에 가겠다고 말씀 드려 14시간 기억방 캠프에 오게 되었다.
나는 목표하는 대학이 있다. 고등학교에 올라오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꼭 저 대학에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고 그 목표를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왔었다. 하지만 공부를 제대로 시작한지 채 3년이 안된만큼, 혼자 공부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아 캠프를 오기 전 내 공부 시간의 대부분은 학원이나 과외가 차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누군가가 내게 시키고 확인하는 공부에 익숙했던 나에게 14시간을 ‘혼자서’ 공부하는 기억방 캠프는 어렵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는데, 자존심도 세고 승부욕도 강한 나에게는 나와 함께 공부하는 다른 친구들보다 내가 적응을 더 못한다는 것은 정말 큰 스트레스였다.
목사님께서는 3일만 견디면 익숙해진다고 하셨지만 나는 3일째에도 몸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음식을 제대로 소화시킬 수가 없었고 일주일이 지날 때 즈음에는 먹고 토하는데 지쳐 그냥 밥을 한 두 숟갈씩, 아주 조금씩만 받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그러다 2주차 초에 위가 너무 아파 공부하다 쓰러졌고, 그 다음날 또 나와서 공부하다 전 날과 비슷한 시각에 다시 쓰러져 병원에 갔다.
차에 타 병원에 가는 그 순간은 정말 ‘내가 이렇게까지 몸 버려가며 여기에 있어야 하나’ 내지는 ‘그냥 집에 가서 좀 쉬고 싶다. 엄마한테 나 데리러 와달라고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대로 포기하고 집으로 가면 자존심이 상해도 너무 상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곧바로 생각을 끊었다.
내게 기억방 캠프에 대해 알려주신건 엄마지만 엄마께 캠프에 오겠다고 말씀 드린건 나였다. 시작을 했으면서 끝을 내지 못하고 포기한다는건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
의사에게 스트레스성 위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다시 숙소로 돌아온 나는 약을 먹고 기억방 학습기 이사님의 발음 기호에 대한 강연을 들으러 갔고, 강연이 끝난 뒤에는 다시 대강당으로 가 책을 펴고 공부했다. 오히려 한 번 확 아프고 나니 더 이상 나올 것도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만큼 공부하다 참지 못하고 쉬러 간 적도 있고, 목사님이 내게 쉬라고 권유하셔서 할 수 없이 쉰 날도 있었지만 그 날 뒤로는 공부를 할 때 산만해지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일이 훨씬 줄어들었다. 생각해보면 그 날이 캠프에서의 내 고비였던 것 같다. 넘을 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한 번 넘고 나니 캠프에 오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게 몸으로 느껴지는게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 곳에서 얻어가는 것이 단순히 한달 간 공부하며 나간 진도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14시간 씩 공부하고 있어도 집에 가면 공부 태도가 다 풀려버릴게 뻔하다. 하지만 일단 한 번 견디는데 성공한만큼 나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가 높아졌으니 다시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한다면 지금보다 더한 것도 못할 이유가 없다. 이미 나는 내가 14시간을 공부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겁을 내며 몸을 사릴 필요가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볼펜 데이 때는 순수 공부로 볼펜 하나를 11시간 반만에 다 써봤고, 큐브 데이 때는 14시간 동안 세번 이상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단어만 외워 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 날은 단어 600개까지 외우는데 성공했다.
두 번의 큐브 데이 중 첫번째 날에는 140개도 겨우 외웠던 나에게는 정말 엄청난 발전이었다.
이렇게 내가 나 자신을 다잡고 공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윤민수 선생님의 공이 크시다. 몸이 아플 때 마음이 힘들어서 개인적으로 선생님께 상담을 하신 적이 있었는데, 윤민수 선생님께서는 저녁식사까지 포기하시며 내게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그 때의 기억이 후에 캠프에서 공부 할 때 내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윤민수 선생님께서는 나 외에도 마음이 풀어지는 아이들을 다잡기 위해 강단에서 앉으신 적이 거의 없는데, 공부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가끔씩 스트레칭을 하려 고개를 들 때마다 강단 위를 왔다 갔다 하시는 선생님이 보여 많이 죄송하고 감사했다.
4주차가 되고 끝이 다가오자 좀 더 공부할걸, 하고 후회하는 친구들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정말 진심으로, 전혀라고 할 수 있을만치 후회가 되지 않는데, 사실 나는 캠프에서 내가 평생 이만큼 오래, 그리고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목표했던 것이 ‘나중에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공부하자’였다. 그 목표를 완벽히는 아니지만 거의 달성한 것을 지금의 나는 알고 있고 말이다.
그리고 캠프를 나온 후의 나의 목표는 지금의 나보다 더 발전하는 것이다. 그때는 분명 나를 다잡기가 쉽지 않겠지만 나는 내가 다음 목표도 결국에는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내 다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토요공동체에 신청했는데, 첫 토요공동체를 할 날이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내가 혹여나 마음이 지금과 달라 어영부영 시간을 버린다면 그 것만큼 바보같은 일이 또 있을까.
사실 내가 가장 걱정되는 점이 바로 캠프 나온 이후 공부 태도를 완전히 놓치고 다시 찾지 못하는 것이다. 캠프에 와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다는 걸 알게되었는데 내가 다시 놀기 시작한다면 그런 친구들을 절대로 따라가지 못할 것 아닌가.
가고 싶은 대학, 목표가 확실히 있는 만큼 나는 그런 태도를 보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정말 공부 태도를 놓치게 된다면 윤민수 선생님이 나를 혼도 내시고 다잡기도 해주실 것이니 약간은 마음이 놓인다. 설마 토요공동체에 다니고, 또 캠프 다니며 만났던 친구들과 윤민수 선생님을 매주 만나면서도 공부하지 않고 나 자신을 방치할까.
부디 내가 토요공동체에 다니면서 지금의 목표도, 그 다음 목표도, 그리고 그 다음 다음의 목표도 훌륭히 성취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이 캠프에 대해 처음 들은건 지난 11월 초순이었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때 놀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인 고 1 겨울 방학을 그런 식으로 보내는 것이 달갑지 않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었지만, 기말고사를 치르고 곧이어 나온 성적에 충격을 받고 곧바로 엄마께 캠프에 가겠다고 말씀 드려 14시간 기억방 캠프에 오게 되었다.
나는 목표하는 대학이 있다. 고등학교에 올라오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꼭 저 대학에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고 그 목표를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왔었다. 하지만 공부를 제대로 시작한지 채 3년이 안된만큼, 혼자 공부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아 캠프를 오기 전 내 공부 시간의 대부분은 학원이나 과외가 차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누군가가 내게 시키고 확인하는 공부에 익숙했던 나에게 14시간을 ‘혼자서’ 공부하는 기억방 캠프는 어렵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는데, 자존심도 세고 승부욕도 강한 나에게는 나와 함께 공부하는 다른 친구들보다 내가 적응을 더 못한다는 것은 정말 큰 스트레스였다.
목사님께서는 3일만 견디면 익숙해진다고 하셨지만 나는 3일째에도 몸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음식을 제대로 소화시킬 수가 없었고 일주일이 지날 때 즈음에는 먹고 토하는데 지쳐 그냥 밥을 한 두 숟갈씩, 아주 조금씩만 받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그러다 2주차 초에 위가 너무 아파 공부하다 쓰러졌고, 그 다음날 또 나와서 공부하다 전 날과 비슷한 시각에 다시 쓰러져 병원에 갔다.
차에 타 병원에 가는 그 순간은 정말 ‘내가 이렇게까지 몸 버려가며 여기에 있어야 하나’ 내지는 ‘그냥 집에 가서 좀 쉬고 싶다. 엄마한테 나 데리러 와달라고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대로 포기하고 집으로 가면 자존심이 상해도 너무 상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곧바로 생각을 끊었다.
내게 기억방 캠프에 대해 알려주신건 엄마지만 엄마께 캠프에 오겠다고 말씀 드린건 나였다. 시작을 했으면서 끝을 내지 못하고 포기한다는건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
의사에게 스트레스성 위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다시 숙소로 돌아온 나는 약을 먹고 기억방 학습기 이사님의 발음 기호에 대한 강연을 들으러 갔고, 강연이 끝난 뒤에는 다시 대강당으로 가 책을 펴고 공부했다. 오히려 한 번 확 아프고 나니 더 이상 나올 것도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만큼 공부하다 참지 못하고 쉬러 간 적도 있고, 목사님이 내게 쉬라고 권유하셔서 할 수 없이 쉰 날도 있었지만 그 날 뒤로는 공부를 할 때 산만해지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일이 훨씬 줄어들었다. 생각해보면 그 날이 캠프에서의 내 고비였던 것 같다. 넘을 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한 번 넘고 나니 캠프에 오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게 몸으로 느껴지는게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 곳에서 얻어가는 것이 단순히 한달 간 공부하며 나간 진도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14시간 씩 공부하고 있어도 집에 가면 공부 태도가 다 풀려버릴게 뻔하다. 하지만 일단 한 번 견디는데 성공한만큼 나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가 높아졌으니 다시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한다면 지금보다 더한 것도 못할 이유가 없다. 이미 나는 내가 14시간을 공부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겁을 내며 몸을 사릴 필요가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볼펜 데이 때는 순수 공부로 볼펜 하나를 11시간 반만에 다 써봤고, 큐브 데이 때는 14시간 동안 세번 이상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단어만 외워 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 날은 단어 600개까지 외우는데 성공했다.
두 번의 큐브 데이 중 첫번째 날에는 140개도 겨우 외웠던 나에게는 정말 엄청난 발전이었다.
이렇게 내가 나 자신을 다잡고 공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윤민수 선생님의 공이 크시다. 몸이 아플 때 마음이 힘들어서 개인적으로 선생님께 상담을 하신 적이 있었는데, 윤민수 선생님께서는 저녁식사까지 포기하시며 내게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그 때의 기억이 후에 캠프에서 공부 할 때 내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윤민수 선생님께서는 나 외에도 마음이 풀어지는 아이들을 다잡기 위해 강단에서 앉으신 적이 거의 없는데, 공부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가끔씩 스트레칭을 하려 고개를 들 때마다 강단 위를 왔다 갔다 하시는 선생님이 보여 많이 죄송하고 감사했다.
4주차가 되고 끝이 다가오자 좀 더 공부할걸, 하고 후회하는 친구들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정말 진심으로, 전혀라고 할 수 있을만치 후회가 되지 않는데, 사실 나는 캠프에서 내가 평생 이만큼 오래, 그리고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목표했던 것이 ‘나중에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공부하자’였다. 그 목표를 완벽히는 아니지만 거의 달성한 것을 지금의 나는 알고 있고 말이다.
그리고 캠프를 나온 후의 나의 목표는 지금의 나보다 더 발전하는 것이다. 그때는 분명 나를 다잡기가 쉽지 않겠지만 나는 내가 다음 목표도 결국에는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내 다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토요공동체에 신청했는데, 첫 토요공동체를 할 날이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내가 혹여나 마음이 지금과 달라 어영부영 시간을 버린다면 그 것만큼 바보같은 일이 또 있을까.
사실 내가 가장 걱정되는 점이 바로 캠프 나온 이후 공부 태도를 완전히 놓치고 다시 찾지 못하는 것이다. 캠프에 와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다는 걸 알게되었는데 내가 다시 놀기 시작한다면 그런 친구들을 절대로 따라가지 못할 것 아닌가.
가고 싶은 대학, 목표가 확실히 있는 만큼 나는 그런 태도를 보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정말 공부 태도를 놓치게 된다면 윤민수 선생님이 나를 혼도 내시고 다잡기도 해주실 것이니 약간은 마음이 놓인다. 설마 토요공동체에 다니고, 또 캠프 다니며 만났던 친구들과 윤민수 선생님을 매주 만나면서도 공부하지 않고 나 자신을 방치할까.
부디 내가 토요공동체에 다니면서 지금의 목표도, 그 다음 목표도, 그리고 그 다음 다음의 목표도 훌륭히 성취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