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방 캠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0월 중순 즈음 이었다. 전부터 학습기는 있었지만 어떻게 사용하는지조차 제대로 모른 채 구석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었다. 처음 접했을 때는 신세계인 것 마냥 신기해서 외워보기도 하고 강의도 들어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흥미는 시들해지고 가족이랑 같이 외워보자는 굳은 다짐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던 차였다. 그때 엄마가 기억방캠프라는 것을 소개해주었다. 수학과 영어만 한 달 내내 공부하는 캠프라는 것을 듣고 나는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방학 동안에 수학과 영어를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전공이 문예창작이기에 문예창작 연습을 방학동안 해도 모자랄 판에 수학과 영어만 한 달간 한다는 것 좀 무리라고 생각했다. 
이 캠프에 오길 망설였던 이유는 이것뿐 아니라 나중에 하루에 14시간 공부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유도 있었다. 하루 일과를 보니 처음엔 그저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6시 반에 기상한다는 것 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뒤에 아침식사 전까지 한 시간 반 공부하는 것은 정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예전에도 한번 아침공부를 시도해본 적이 있었지만 일어나면 씻고 비몽사몽 한채 하릴없이 앉아만 있거나 딴 짓을 하기 일쑤였다. 사실 주말엔 거의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있다시피 하지만 시간에 비해 능률이란 것이 부족했다. 집중도 잘 되지 않았고 오후가 되면 졸렸으며 청소하는 소리에 마음이 풀어지곤 했다. 그런 면에서는 어쩌면 괜찮은 캠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캠프를 가는 도중에도 나는 여전히 약간의 의심과 의문, 그리고 흐릿한 나의 의지를 품고 있었다.
처음 캠프에 대한 이미지는 우유부단한 나의 의지에 반해 엄청난 열정으로 새겨진 듯한 글자, 공부는 앎이다. 라는 글자가 제일 강렬하게 남았다. 은근슬쩍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걱정이 밀려오고 갑자기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얼핏 봐도 산속 외딴 곳에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어떻게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 한 달을 버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서 터벅터벅 걷는 다른 참여자들 사이로 한 달보다 길 것 같은 걸쭉한 한숨을 내쉬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월요일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물론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순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예상했던 힘든 정도를 너무 크게 잡은 것인지 약간은 허무한 기분도 들었다. 매일같이 앉아있던 습관이 이제야 빛을 발하나 싶었다.
공부를 하면서 윤민수 목사님의 모습은 언제나 가운데에 곧게 서계셨다. 엄한 눈빛이나 강제적인 분위기를 잡고는 계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앞에 서서 항상 매의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지만 우리를 걱정하는 마음이 간간히 전해지는 것 같아 안정이 되었다.
목사님이 가끔 특강을 할 때면 나는 그 시간이 정말 좋았다. 목사님이 말씀을 잘하실 뿐만 아니라 목사님 스스로의 경험으로 우러나오는 살아있는 설교라는 것이 느껴져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경고가 졸린 뇌를 수시로 자극했다.
일요일 예배를 드릴 때도 목사님은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진부한 내용과 달리 논리적으로 왜 예수님을 믿어야하는지 증거를 몇 가지 제시하면서 설교를 하셨다. 그랬더니 교회 온 느낌이 나지 않았다는 친구의 말도 있었지만 나는 정말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게다가 찬양노래도 좋았고 교회 온 분위기가 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이 캠프에 와서 교회가 이렇게 재미있는 곳이었는지 알게 된 것 같다. 나중에 다시 기회가 된다면 찬양팀에 들어가보고 싶다.
14시간 공부를 하면서 30분 계획표는 빠뜨려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30분 계획표가 없었다면 30분이 가면 가는구나 이제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할 엄두도 안날 정도로 까마득하게 남았는데 언제 시간이 갈까하면서 한숨만 푹푹 내쉴 것 같다. 때로는 30분 계획표가 있어도 힘든 날이 있다. 그럴 때면 30분씩 조금이지만 차곡차곡 쌓이다보면 ‘언젠가는 저녁시간이 오겠지’하고 생각 없이 공부하다보면 어느새 5시가 되어있고 어느새 밥 먹으러 줄서고 있다. 언젠가 하루는 열이 너무 심하게 나서 양호실을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날이 있었다.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무슨 고집인지 끝까지 버티고 앉아서 6시까지 견딘 적이 있었다. 결국 오후에는 양호실에 있었지만 그 때는 고통이었을지라도 지금 생각해보면 30분계획표가 하나하나 채워지는 그 느낌에만 의지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곳에 와서 정말 많은 것을 얻어가겠구나 싶었다. 공부습관 이라던지 집중력 이라던지 다른 깨달음 같은 것이 자잘하게 많을 줄 알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았지만 매일같이 공부하다보면 간단하게 한 가지로 정리되었다.
나에게 제일 큰 한가지 깨달음은
계산하지 말고 열심히, 추상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서의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었다.
윤민수목사님의 말을 인용했지만 그만큼 깊게 다가온 말이었다.
말로만 최선을 다했다고는 하지만 나는 산 중턱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우와 멀리 왔다 난 정말 열심히 했구나 라고 환호한 셈이었다. 그 위로 더 가보지도 않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 것이 이제 와서 너무나 부끄럽게 남는다. 
다른 한 가지 깨달음은 일단은 도전해보자는 것이다. 이번 캠프도 누구나 쉽게 말하고 다닐 수 있는 그런 가벼운 캠프는 절대 아니었고 약간의 한계에 도전하며 불가능하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그런 캠프였지만 나는 해냈고 할 수 있었다. 예전에 공부로 성공한 사람들의 수기를 정말 많이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때마다 그들의 치열하고 항상 열정으로 불탔던 모습에 반해 나도 해보겠다고 다짐만 하거나 혹은 ‘정말 멋있지만 나는 못 하겠지’라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 이런 힘든 도전을 평온하고 그저 그랬던 생활 속에서 한번쯤 할 수 있었던 것이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캠프가 끝나는 날까지 열심히 해서 퇴소하는 마지막 날엔 최선을 다했다고 누구에게나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이 목표이다.
기억방 캠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0월 중순 즈음 이었다. 전부터 학습기는 있었지만 어떻게 사용하는지조차 제대로 모른 채 구석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었다. 처음 접했을 때는 신세계인 것 마냥 신기해서 외워보기도 하고 강의도 들어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흥미는 시들해지고 가족이랑 같이 외워보자는 굳은 다짐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던 차였다. 그때 엄마가 기억방캠프라는 것을 소개해주었다. 수학과 영어만 한 달 내내 공부하는 캠프라는 것을 듣고 나는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방학 동안에 수학과 영어를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전공이 문예창작이기에 문예창작 연습을 방학동안 해도 모자랄 판에 수학과 영어만 한 달간 한다는 것 좀 무리라고 생각했다.
이 캠프에 오길 망설였던 이유는 이것뿐 아니라 나중에 하루에 14시간 공부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유도 있었다. 하루 일과를 보니 처음엔 그저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6시 반에 기상한다는 것 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뒤에 아침식사 전까지 한 시간 반 공부하는 것은 정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예전에도 한번 아침공부를 시도해본 적이 있었지만 일어나면 씻고 비몽사몽 한채 하릴없이 앉아만 있거나 딴 짓을 하기 일쑤였다. 사실 주말엔 거의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있다시피 하지만 시간에 비해 능률이란 것이 부족했다. 집중도 잘 되지 않았고 오후가 되면 졸렸으며 청소하는 소리에 마음이 풀어지곤 했다. 그런 면에서는 어쩌면 괜찮은 캠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캠프를 가는 도중에도 나는 여전히 약간의 의심과 의문, 그리고 흐릿한 나의 의지를 품고 있었다.
처음 캠프에 대한 이미지는 우유부단한 나의 의지에 반해 엄청난 열정으로 새겨진 듯한 글자, 공부는 앎이다. 라는 글자가 제일 강렬하게 남았다. 은근슬쩍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걱정이 밀려오고 갑자기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얼핏 봐도 산속 외딴 곳에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어떻게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 한 달을 버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서 터벅터벅 걷는 다른 참여자들 사이로 한 달보다 길 것 같은 걸쭉한 한숨을 내쉬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월요일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물론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순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예상했던 힘든 정도를 너무 크게 잡은 것인지 약간은 허무한 기분도 들었다. 매일같이 앉아있던 습관이 이제야 빛을 발하나 싶었다.
공부를 하면서 윤민수 목사님의 모습은 언제나 가운데에 곧게 서계셨다. 엄한 눈빛이나 강제적인 분위기를 잡고는 계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앞에 서서 항상 매의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지만 우리를 걱정하는 마음이 간간히 전해지는 것 같아 안정이 되었다.
목사님이 가끔 특강을 할 때면 나는 그 시간이 정말 좋았다. 목사님이 말씀을 잘하실 뿐만 아니라 목사님 스스로의 경험으로 우러나오는 살아있는 설교라는 것이 느껴져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경고가 졸린 뇌를 수시로 자극했다.
일요일 예배를 드릴 때도 목사님은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진부한 내용과 달리 논리적으로 왜 예수님을 믿어야하는지 증거를 몇 가지 제시하면서 설교를 하셨다. 그랬더니 교회 온 느낌이 나지 않았다는 친구의 말도 있었지만 나는 정말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게다가 찬양노래도 좋았고 교회 온 분위기가 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이 캠프에 와서 교회가 이렇게 재미있는 곳이었는지 알게 된 것 같다. 나중에 다시 기회가 된다면 찬양팀에 들어가보고 싶다.
14시간 공부를 하면서 30분 계획표는 빠뜨려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30분 계획표가 없었다면 30분이 가면 가는구나 이제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할 엄두도 안날 정도로 까마득하게 남았는데 언제 시간이 갈까하면서 한숨만 푹푹 내쉴 것 같다. 때로는 30분 계획표가 있어도 힘든 날이 있다. 그럴 때면 30분씩 조금이지만 차곡차곡 쌓이다보면 ‘언젠가는 저녁시간이 오겠지’하고 생각 없이 공부하다보면 어느새 5시가 되어있고 어느새 밥 먹으러 줄서고 있다. 언젠가 하루는 열이 너무 심하게 나서 양호실을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날이 있었다.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무슨 고집인지 끝까지 버티고 앉아서 6시까지 견딘 적이 있었다. 결국 오후에는 양호실에 있었지만 그 때는 고통이었을지라도 지금 생각해보면 30분계획표가 하나하나 채워지는 그 느낌에만 의지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곳에 와서 정말 많은 것을 얻어가겠구나 싶었다. 공부습관 이라던지 집중력 이라던지 다른 깨달음 같은 것이 자잘하게 많을 줄 알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았지만 매일같이 공부하다보면 간단하게 한 가지로 정리되었다.
나에게 제일 큰 한가지 깨달음은
계산하지 말고 열심히, 추상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서의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었다.
윤민수목사님의 말을 인용했지만 그만큼 깊게 다가온 말이었다.
말로만 최선을 다했다고는 하지만 나는 산 중턱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우와 멀리 왔다 난 정말 열심히 했구나 라고 환호한 셈이었다. 그 위로 더 가보지도 않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 것이 이제 와서 너무나 부끄럽게 남는다.
다른 한 가지 깨달음은 일단은 도전해보자는 것이다. 이번 캠프도 누구나 쉽게 말하고 다닐 수 있는 그런 가벼운 캠프는 절대 아니었고 약간의 한계에 도전하며 불가능하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그런 캠프였지만 나는 해냈고 할 수 있었다. 예전에 공부로 성공한 사람들의 수기를 정말 많이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때마다 그들의 치열하고 항상 열정으로 불탔던 모습에 반해 나도 해보겠다고 다짐만 하거나 혹은 ‘정말 멋있지만 나는 못 하겠지’라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 이런 힘든 도전을 평온하고 그저 그랬던 생활 속에서 한번쯤 할 수 있었던 것이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캠프가 끝나는 날까지 열심히 해서 퇴소하는 마지막 날엔 최선을 다했다고 누구에게나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이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