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기말고사 성적을 바닥을 치면서
아빠의 나에 대한 신뢰도 함께 바닥을 쳤다.
그래서 아빠께서 이 것 저 것 찾아보다가 이 캠프를 찾으신듯하다.
하루14시간 공부.
아빠한테 매우 자극적이었을 것이다.
처음에 아빠가 캠프얘기를 꺼냈을 때는 싫다, 안 갈 것이다,
가출 하겠다 등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난리를 쳤다.
하지만 캠프입소 날이 다가오자 입대 날이 다가오는 청년처럼
내 마음은 숙연해지고 주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캠프를 들어와 각자의 방에서 대기를 하고 있을 때
엄마가 강조하고 갔던 부분
“절대로 친구사귈 생각하지 말고 남자랑은 말도 섞지 마!!”
엄마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구를 잘 사귀었다.
캠프의 시작은 새벽 5시 30분이었다.
씻고 강당으로와 책을 폈지만 글자는 한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졸리기만 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3일정도 지나자 적응이 되었는지 눈이 말똥해 지고, 집중도 잘 되었다.
살짝 자랑을 하자면, 집에서는 책도 안 보던 내가
캠프에 와서는 일주일 만에 국어 자습서를 다 끝냈고, 2주에 걸쳐서
<수학의 바이블-수1> 과 영어 문법책 한권을 다 끝냈다.
시작 날부터 영단어도 하루에 2단원씩 외워서
꽤 많은 단어를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뭐, 처음에는 캠프에 공부를 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헬퍼 선생님들의 실력보다는 외모(?)에 관심이 많았다.
캠프에 들어오기 전에 친구들에게 한말이
“야, 잘생긴 선생님들은 바라지도 않는다. 잘생긴 오빠들이나 있었으면 좋겠다.” 라며 웃어넘기곤 했지만
생각과는 달리 잘생기고 예쁜 선생님들께서 공부도 잘하시고
잘 가르쳐주시니까 부러움, 자괴감 등등의 많은 감정이 섞여
복잡 미묘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헬퍼 선생님들께서는 슈퍼맨처럼 손만 들면 어디선가 나타나셔서는
어려운 문제를 쉽고, 빠르게 설명해주시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지셨다.
여기는 홍길동이 30명 정도 있는 듯하다.
또 하루에 두 번 정도 헬퍼 선생님들께서
본인들의 공부방법등을 다룬 특강을 해주셨다.
각기 다른 방법이었지만 공통점을 찾다보니
강당 여기저기 걸려있는 현수막에 적힌 “알때까지 공부하라”였다.
공부는 “앎” 이 아닌 공부는 “암” 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하다 보니 뭐, 공부도 별거 아니라는 생각과
나도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서울대...는 아니어도
연·고대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약간의,
아주 약간의 희망을 품게 되었다.
윤요한 선생님.. 이곳의 우두머리이자 수장.
아 둘다 똑같은 말이지.
하여튼 원장님께서는 대단한 분이신 것 같다.
우리는 14시간동안 앉아있지만 원장님께서는 서 계신다.
또 아이들이 30분 생활계획표를 잊어먹지 않도록
30분마다 시간을 알려주시고 계획표를 쓸 수 있게 도와주신다.
마치 알람처럼.
나는 이런 곳에 와도 딴 짓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씩은 하지만 딴 짓이란 것을 오래 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왜? 불안해서.
딴 짓하다가 걸려서 혼이 날까 무섭고,
제일 큰 이유는 뭔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공부를 하고 있는데,
나만 공부를 안 하고 있으니까 뭔가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다시 공부를 하게 된다.
14시간동안 그렇게 공부를 했다.
분명히 멍 때리거나 조는 시간도 있었겠지만
나에게 이정도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다.
수학은 풀어보고 나서 이해가 안 되면 답지를 째려보며 문제와 밀당을 한다.(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고도 문제와의 “썸”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면
헬퍼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는다.
영어는 인강의 도움을 받았다.
인강을 들으면서 필기를 하고 문제를 푼 다음,
인강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문제 풀이를 들으며 다시 한 번 머리에 넣었다.
함께 공동체로 공부를 하니 가장 좋은 점은
아까도 말했듯이, 앞을 봐도, 오른쪽을 봐도, 왼쪽을 봐도
모두 공부를 하고 있으니 나도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서라도
공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두 같이 14시간씩 공부를 하니 누구에게 힘들다 투정할 수도 없다.
모두 똑같이 힘드니까.
다만 방에 돌아가 쉬면서 오늘 하루에 대해 방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으로 푼다.
30분 계획표 역시 나에게는 의미 없을 것 이라고 믿었다.
계획의 “계”자도 싫어했던 나였다.
캠프에서 나눠주는 계획표를 보고 치를 떨었지만
어느새 나는 계획표가 없어지면 불안에 떠는 계획표“충” 이 되었다.
30분마다 계획표를 세우면 좋은 점은 30분이라는 짧지만 긴 시간동안
할 수 있는 공부의 양을 막연하게 세우는 것이 아니라,
디테일하게 세우니 그 목표를 도달하면 뿌듯함과,
하루 일과를 끝내고 계획표를 보며
내 자신에게 칭찬을 하는 맛으로 쓰는 것 같다.
캠프에 오지 않았다면 뭐, 나는 지금쯤 신나게 놀고 있을 것이다.
학원 끝나면 숙제도 안하고 가방만 놓고 놀러나가고,
주말에는 잠도 늘어지게 자고, 그러다보니 방학이 지루해질 때도 있었지만
캠프에오니 방학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너무 느리게만 가던 시간이 이곳에서는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서
불안하기까지 하다.
집으로 돌아가서는 최대한 이 생활을 유지해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힘들게 쌓아놓은 것을 한 번에 무너트릴까봐 걱정이 되지만,
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캠프의 좋은점은 공동체 학습이라는 점이다.
다 같이 하는 공부가 의미 있는 것 같다.
엄마 아빠 나가서 열심히 해 볼 테니까 지켜봐주면 좋겠어요.
doolly0629@naver.com
중2 기말고사 성적을 바닥을 치면서
아빠의 나에 대한 신뢰도 함께 바닥을 쳤다.
그래서 아빠께서 이 것 저 것 찾아보다가 이 캠프를 찾으신듯하다.
하루14시간 공부.
아빠한테 매우 자극적이었을 것이다.
처음에 아빠가 캠프얘기를 꺼냈을 때는 싫다, 안 갈 것이다,
가출 하겠다 등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난리를 쳤다.
하지만 캠프입소 날이 다가오자 입대 날이 다가오는 청년처럼
내 마음은 숙연해지고 주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캠프를 들어와 각자의 방에서 대기를 하고 있을 때
엄마가 강조하고 갔던 부분
“절대로 친구사귈 생각하지 말고 남자랑은 말도 섞지 마!!”
엄마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구를 잘 사귀었다.
캠프의 시작은 새벽 5시 30분이었다.
씻고 강당으로와 책을 폈지만 글자는 한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졸리기만 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3일정도 지나자 적응이 되었는지 눈이 말똥해 지고, 집중도 잘 되었다.
살짝 자랑을 하자면, 집에서는 책도 안 보던 내가
캠프에 와서는 일주일 만에 국어 자습서를 다 끝냈고, 2주에 걸쳐서
<수학의 바이블-수1> 과 영어 문법책 한권을 다 끝냈다.
시작 날부터 영단어도 하루에 2단원씩 외워서
꽤 많은 단어를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뭐, 처음에는 캠프에 공부를 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헬퍼 선생님들의 실력보다는 외모(?)에 관심이 많았다.
캠프에 들어오기 전에 친구들에게 한말이
“야, 잘생긴 선생님들은 바라지도 않는다. 잘생긴 오빠들이나 있었으면 좋겠다.” 라며 웃어넘기곤 했지만
생각과는 달리 잘생기고 예쁜 선생님들께서 공부도 잘하시고
잘 가르쳐주시니까 부러움, 자괴감 등등의 많은 감정이 섞여
복잡 미묘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헬퍼 선생님들께서는 슈퍼맨처럼 손만 들면 어디선가 나타나셔서는
어려운 문제를 쉽고, 빠르게 설명해주시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지셨다.
여기는 홍길동이 30명 정도 있는 듯하다.
또 하루에 두 번 정도 헬퍼 선생님들께서
본인들의 공부방법등을 다룬 특강을 해주셨다.
각기 다른 방법이었지만 공통점을 찾다보니
강당 여기저기 걸려있는 현수막에 적힌 “알때까지 공부하라”였다.
공부는 “앎” 이 아닌 공부는 “암” 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하다 보니 뭐, 공부도 별거 아니라는 생각과
나도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서울대...는 아니어도
연·고대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약간의,
아주 약간의 희망을 품게 되었다.
윤요한 선생님.. 이곳의 우두머리이자 수장.
아 둘다 똑같은 말이지.
하여튼 원장님께서는 대단한 분이신 것 같다.
우리는 14시간동안 앉아있지만 원장님께서는 서 계신다.
또 아이들이 30분 생활계획표를 잊어먹지 않도록
30분마다 시간을 알려주시고 계획표를 쓸 수 있게 도와주신다.
마치 알람처럼.
나는 이런 곳에 와도 딴 짓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씩은 하지만 딴 짓이란 것을 오래 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왜? 불안해서.
딴 짓하다가 걸려서 혼이 날까 무섭고,
제일 큰 이유는 뭔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공부를 하고 있는데,
나만 공부를 안 하고 있으니까 뭔가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다시 공부를 하게 된다.
14시간동안 그렇게 공부를 했다.
분명히 멍 때리거나 조는 시간도 있었겠지만
나에게 이정도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다.
수학은 풀어보고 나서 이해가 안 되면 답지를 째려보며 문제와 밀당을 한다.(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고도 문제와의 “썸”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면
헬퍼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는다.
영어는 인강의 도움을 받았다.
인강을 들으면서 필기를 하고 문제를 푼 다음,
인강 선생님께서 해주시는 문제 풀이를 들으며 다시 한 번 머리에 넣었다.
함께 공동체로 공부를 하니 가장 좋은 점은
아까도 말했듯이, 앞을 봐도, 오른쪽을 봐도, 왼쪽을 봐도
모두 공부를 하고 있으니 나도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서라도
공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두 같이 14시간씩 공부를 하니 누구에게 힘들다 투정할 수도 없다.
모두 똑같이 힘드니까.
다만 방에 돌아가 쉬면서 오늘 하루에 대해 방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으로 푼다.
30분 계획표 역시 나에게는 의미 없을 것 이라고 믿었다.
계획의 “계”자도 싫어했던 나였다.
캠프에서 나눠주는 계획표를 보고 치를 떨었지만
어느새 나는 계획표가 없어지면 불안에 떠는 계획표“충” 이 되었다.
30분마다 계획표를 세우면 좋은 점은 30분이라는 짧지만 긴 시간동안
할 수 있는 공부의 양을 막연하게 세우는 것이 아니라,
디테일하게 세우니 그 목표를 도달하면 뿌듯함과,
하루 일과를 끝내고 계획표를 보며
내 자신에게 칭찬을 하는 맛으로 쓰는 것 같다.
캠프에 오지 않았다면 뭐, 나는 지금쯤 신나게 놀고 있을 것이다.
학원 끝나면 숙제도 안하고 가방만 놓고 놀러나가고,
주말에는 잠도 늘어지게 자고, 그러다보니 방학이 지루해질 때도 있었지만
캠프에오니 방학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너무 느리게만 가던 시간이 이곳에서는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서
불안하기까지 하다.
집으로 돌아가서는 최대한 이 생활을 유지해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힘들게 쌓아놓은 것을 한 번에 무너트릴까봐 걱정이 되지만,
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캠프의 좋은점은 공동체 학습이라는 점이다.
다 같이 하는 공부가 의미 있는 것 같다.
엄마 아빠 나가서 열심히 해 볼 테니까 지켜봐주면 좋겠어요.
doolly0629@naver.com